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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진정성의 경계, ‘예스터데이’의 질문

by strawcherry 2025. 8. 7.

영화 예스터데이

영화 ‘예스터데이(Yesterday)’는 단순한 음악 영화가 아닙니다. ‘비틀즈가 사라진 세계’라는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음악의 본질과 창작의 의미, 그리고 비틀즈 음악이 가지는 시대적 상징성을 흥미롭게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속에서 재해석된 비틀즈 음악들이 어떤 맥락과 메시지를 지니고 있는지, 작품성 측면에서 자세히 분석해 보겠습니다.

음악적 재해석의 가치 (작품성)

‘예스터데이’는 기존 음악을 단순히 재연하거나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주인공 잭 말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비틀즈를 기억하는 인물이 되면서, 그들의 음악을 현대에 맞게 다시 부르게 됩니다. 중요한 점은 이 음악들이 원곡 그대로 사용되지만, 전달되는 느낌과 메시지는 완전히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초반 잭이 부른 ‘Yesterday’는 원곡의 슬픈 발라드 감성을 유지하면서도, 전혀 다른 사회적 맥락에서 연주되기에 관객에게는 새롭게 다가옵니다. 과거의 상실과 회한을 담은 곡이었지만, 영화에서는 ‘세상에서 잊힌 위대한 음악’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창작의 의미를 더욱 강조합니다. 또한 ‘Let It Be’는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중단되며, 잭이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다 번번이 실패하는 장면에 삽입됩니다. 이는 곡의 원래 의미인 ‘흐름에 맡기자’는 평온함보다, 현대 사회의 소음과 방해, 창작자의 조급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스터데이’는 단순히 명곡을 다시 들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각 곡이 가진 정서와 메시지를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구성하여 ‘음악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울림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비틀즈 음악의 상징성과 의미 (의미)

비틀즈의 음악은 그 자체로 시대정신을 대변합니다. 1960~70년대 반전운동, 자유, 사랑, 저항의 아이콘이었던 그들의 노래는 단순한 팝 넘버를 넘어서, 세계 청년들의 감정과 정체성을 담아냈습니다. ‘예스터데이’는 그런 음악들이 사라진 세상을 설정함으로써,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되묻습니다. 주인공 잭은 비틀즈 음악을 통해 갑작스레 스타가 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점점 ‘자신의 정체성’과 멀어져 갑니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갈등을 넘어서, 음악의 ‘진정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설정입니다. 음악은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누가 진짜 예술가인가? 영화에서 ‘Hey Jude’는 ‘Hey Dude’로 바뀌는 장면에서 그 상징성이 극대화됩니다. 단순한 오타처럼 보이지만, 이는 상업성과 대중성을 위해 원작이 희생되는 순간을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원곡이 가진 감성과 서정성이 시장의 요구로 왜곡되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창작의 본질을 다시 질문합니다. 또한 'The Long and Winding Road'는 주인공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중요한 장면에 배치되며, 이 곡의 원래 의미였던 '끝없이 이어지는 인생의 길'이라는 상징이, 영화 속에서는 '진짜 나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테마로 확장됩니다. 즉, 영화는 비틀즈 음악을 그 자체로 숭배하거나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곡이 가진 ‘의미의 재해석’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음악이 시대와 청중에 따라 다른 해석과 가치를 가지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상상력과 창작윤리 사이의 경계 (재구성)

‘예스터데이’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상상력’과 ‘창작윤리’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탐구한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은 순수한 동기로 비틀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지만, 이내 상업적 성공이라는 유혹에 빠지며 점차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합니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예술의 원천이 반드시 작가 본인에게 있어야 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매우 유효합니다. 인터넷과 인공지능, 복제와 샘플링이 보편화된 시대에서, 창작과 표절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런 문제를 직설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한 개인이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느냐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결국 잭은 음악의 진정성을 지키기 위해 ‘비틀즈의 음악이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님’을 고백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메시지는, 위대한 창작물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정체성·철학·책임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스터데이’는 상상력을 극단으로 끌고 간 설정 속에서도 윤리적 판단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으며, 창작자의 자세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재미있는 점은,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존 레논’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이제껏 유명해지지 않았지만, 평온하고 진실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이는 ‘성공하지 않아도 좋은 예술은 존재할 수 있다’는, 매우 인간적인 위안을 전하며 영화의 메시지를 정리해줍니다.

‘예스터데이’는 단순히 비틀즈 음악을 들려주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 곡들을 현대의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음악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와 창작윤리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음악을 사랑하거나, 예술과 상상력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반드시 한 번은 곱씹어볼 가치가 있습니다.